무차별 폭행 당한 여자를 구한 버스기사의 재기

Posted by 아바래기
2010. 10. 29. 06:30 소소한 일상 이야기
 며칠 전 딸아이가 인터넷을 통해 EBS 다큐프라임 <인간의 두 얼굴>라는 다큐멘터리의 캡쳐본을 보여준 적이 있습니다. 전체 내용은 아니고 다큐멘터리의 일부분이 담겨있는 캡쳐본이었는데 너무 충격적이라면서 저보고 보라고 한 것이지요. 딸아이가 보여준 캡쳐본은 한 여성이 지하철에서 단지 뚱뚱하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승객에게 폭행을 당했고,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승객이 그녀를 외면했다는 기가 막히고 분통터지는 내용이었습니다. 

 “어떻게 사람들이 이렇게 냉정할 수가 있어?”

 딸아이의 물음에 맞장구를 쳐주려다가 불현듯 10여년전의 기억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입을 앙 다물수 밖에 없었습니다. 10여년 전, 나 역시 ‘그녀’를 외면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말입니다.

EBS 다큐프라임, <인간의 두 얼굴> 中
 저의 부끄러운 기억은 10여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둘째 언니가 <아가씨와 건달들>이라는 공연을 보여준다고 하길래 저는 안양에서 서울까지 올라갔습니다. 가슴 설레는 공연을 보고 언니가 사주는 밥까지 맛있게 얻어먹은 저는 해가 질 무렵, 언니와 집에 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운이 좋게 우리 두 사람은 앞자석,뒷자석 붙어 앉게 되었고, 자연스레 공연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 받았죠. 그렇게 얼마를 갔을까. 버스가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정류장에서 섰고, 사람들이 하나 둘 올라타는데 심상치 않은 남자가 올라타더라고요.

 덩치도 크고 왠지 모르게 위압감이 느껴지는 인상에다가 모자까지 꾹 눌러쓴 남자의 등장에 언니와 저는 그 남자를 한번 쳐다보게 되었습니다. 남자는 두리번 두리번 거리더니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남자가 꺼내든 것은 종이뭉치였습니다. 남자는 종이뭉치를 들고 크게 기침을 두어번 하더니,

 “여러분! 큰 집에서 나온지 얼마되지 않아 열심히 좀 살아보려 하는데 한번 도와줍쇼.”

지금 들으면 왠지 유치한 말을 꺼내면서 일장연설을 시작하더라고요. 듣고 싶지 않아도 목소리가 워낙 커 들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 다들 그 남자의 연설을 듣긴 했지만 얼굴에 칼자국까지 있는 험상궂은 인상에 하는 몸짓도 껄렁껄렁한게 한마디로 상대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 다들 알게 모르게 남자를 외면하고 있었습니다.

남자는 대충 연설을 끝내고 앉아있는 승객들 무릎에 조금 전에 읊었던 종이를 한장씩 올려두었습니다. 버스 안을 한바퀴 돌면서 종이를 돌린 남자는 다시 한바퀴 버스 안을 돌면서 종이을 걷으면서 손을 내밀었습니다. 남자의 한번 도와달라는 말의 의미를 이제야 알게 된 것이죠.

 귀찮은지 겁이 나서인지 돈을 몇 푼 주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끝까지 모르는 척 창밖만 보고 있었습니다. 종이를 거의 다 회수할 무렵, 희생양 ‘그녀’의 차례가 다가왔습니다.

 “씨X! 나도 좀 먹고 살자고! 도와달라고 한 거 못들어? X같네 진짜!”

남자의 욕설이 터지는 동시에 한눈에 봐도 연약해보이던 그녀의 뺨이 돌아갔습니다. 어찌나 인정사정없이 뺨을 때리던지 두 세번 쳤을까요? 촥촥~ 살벌한 소리와 함께 여자의 코에 피가 팍 하고 터졌습니다. 그 광경이 얼마나 살벌하고 생생한지 그녀의 코피가 그녀의 하얀 블라우스 적신 장면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순간 버스 안은 숨소리 조차 들리지 않는 적막함에 휩싸였습니다. 그 놈은 적막함에 취한듯 더 살벌하게 눈알을 부라리면서 썅욕을 하며, 

 “내가 몇년만에 깜방에서 나왔는데 참사람으로 살아가려고 고개까지 숙였는데 니네들까지 날 무시해?”

고래고래 소리지르면서 발로 좌석을 펑펑 까더라고요. 그 코피 터진 아가씨는 큰 소리도 못낸채 바들바들 떨고있더라고요. 

 사람들은 남자의 살기에 눌린 듯 다들 공포심에 떨고 있었습니다. 저는 맞은편에 앉아 있던 그 아가씨가 너무나 걱정이 되서 다가가 손수건이라도 건내주려고 반쯤 일어섰는데 제 뒤에 앉아있던 언니가 저를 무조건 잽싸게 주저앉히는 거예요. 

 “너 나서지마. 저런 놈들은 사람 죽여도 아무렇지 않은 새끼들이야. 무조건 조용히 있어.”
 “그래도…”

저는 그래도 그녀가 걱정되는 마음에 일어나려고 했지만 언니와 나의 수근거림을 들은 그 놈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심장이 멎는 줄 알았습니다. 어찌나 눈빛이 살벌한지! 순간 부끄럽게도 몸이 굳어버렸습니다. 모두 그 남자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바닥만 보고 있더라고요. 그 놈은 의기양양해서 일부러 주먹질 하는 시늉을 하며,

 “어차피 인생 쫑친거 같이 한번 죽어볼래? 이것들이 진짜 승질나게 하네! ”

가래침까지 퉤퉤 뱉더라고요. 한마디로 버스 안은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남자는 버스를 완벽히 장악했고 마치 시간이 멈춰져있는 듯 그 시간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버스 안 공포의 시간은 계속 되었습니다. 남자는 위협적인 행동을 계속 하다가 불현듯 아까 자기가 때린 아가씨 앞으로 가더라고요.

 “시X! 언제까지 질질짤래? 너 죽어볼래?”

그러면서 남자는 또 다시 그 여성의 뺨을 때리는거예요. 정말 이러다가 저 여자가 어떻게 될 것 같다는 걱정이 앞서면서 이러고 있는 제 자신이 한심하고 이 상황 자체가 분통이 터지더라고요. 특히 건장한 남자 서너명이 있었는데 뭐하고 있는지 화가 치밀더라고요. 어떡하지? 어떻게 하면 이 상황에서 빠져나오지? 머리를 최대한 굴리고 있는 찰나!

 버스가 말그대로 미친 듯한 속도로 어딘가를 향해 달려나가더라고요. 사실 다들 바닥만 보느냐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있었는데 갑자기 버스가 돌진을 하니 다들 놀랄 수 밖에 없었죠. 물론 놀라기는 그 놈 마찬가지였습니다.

 “야 뭐하는 거야! 차 못세워? 당장 차 세워!”

 남자의 위협적인 협박에 기사 아저씨도 무척이나 긴장했겠지만 아저씨는 끝까지 차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때서야 아저씨가 어디를 향해 달렸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건 바로 파출소! 파출소를 발견한 그 놈은 미친듯이 날뛰기 시작했습니다. 

 “너 죽을래? 한번 죽어볼래?”

기사아저씨를 향한 그 놈의 분노는 극에 달했습니다. 파출소 코 앞까지 왔지만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죠. 결국 문은 열렸고 그 미친 놈은 말그대로 미친듯이 달아났습니다. 그 놈을 잡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이렇게나마 일단락 된 게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버스기사 아저씨의 용기와 재기에 박수를 치며 그 끔찍했던 시간은 끝났습니다. 벌써 10년이나 지났지만 이와 비슷한 사건을 보면 뇌리에 고스란히 남은 이 사건이 떠오릅니다. 저 역시 이렇게 끔찍한데 그 때 폭행당한 아가씨는 얼마나 끔찍했을까요?

 이제와 돌이켜보면 그 때 선뜻 나서지 못한 제 자신이 너무나 부끄럽고 만약 그 때로 돌아간다면 조금 더 적극적으로 제가 그 아가씨를 돕지 않을까 하는 미련이 남습니다.


    • 2010.10.29 06:52
    비밀댓글입니다
  1. 그때는 저런 놈들 많았죠.
    저도 뭐 그리 인상이 좋은 편이 아니라, 마주 쳐다 보니 그냥 외면하던데요? ^^;
  2.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래요? 너무 기가 막혀서 뭐라고 써야할지 모르겠습니다.
  3. 요즘은 그나마 덜하지만 옛날엔 비슷한 예가 많았었죠.
    그래도 인상만 썼는데 폭행까지 했다니...헐~~
    그 당시는 버스기사들이 파출소 앞에 차 대는게 예사였었죠.
  4. 백주 대낮에 어찌 이런 일이~
    그 운전자 존경합니;다.
  5. 기사아저씨 참 용감하셨던 것 같아요.
    존경스럽기조차 합니다.
  6. 거참... 10년전 일이라지만..
    살짝 어이가 없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그렇네요.

    요즘은 함부로 도와주다간 덤탱이까지 쓰는 세상이다보니...
  7. 10년전이였다면 기사분 보호하는 칸막이가 없으셨을텐데요..
    용기가 대단하셨던것 같네요
  8. 운전기사가 그래도 순간적으로 찬스를 잘 이용했군요.
    아무리 못된 놈이라도 파출소에서 사람을 폭행하지는 못하겠지요.
  9. 안녕하세요?
    부천시 공식블로그 판타시티입니다. ^^

    10년 전만 해도 그런 일이 있었군요.
    요즘도 그런 일이 있을까요? 에휴...
    글 잘보고, 추천하고 갑니다.
    저희 블로그에도 놀러와 주세요. ^^
  10. 정말 기가막힌일이군요..글을 읽다보니 부들부들 떨립니다.
    휴..
  11. 생각만 해도 무섭습니다. 쩝..

    잘 보고 가요.

    즐거운 주말 되세요.
  12. 참 어쩌구니가 없군요 콩밥을 덜 먹고 나온듯 하네요^^
  13. 읽으면서 가슴이 부글부글...잡았으면 좋았을텐데요.
  14. 지나고 나면 누구나 후회되는 과거의 순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더 이상 마음에 담아두지 마시길...
  15. 요즘에는 이런 일이 없겠죠??
    10여년 전에 있었던 일이라니 정말....

    잡혔을까요?
  16. 읽으면서도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이 발생하면
    쉽지는 않을겁니다.
  17. 아바래기님... 저 이 포스트를 읽고 나서 며칠간... 계속 그 장면이 상상되면서 죽겠습니다. 약간 대인기피증(?)이 생기는 것 같아요..ㅜㅜ 평소에 버스를 자주 타는 편인데, 조금만 험한 인상의 남자가 타기만 하면 바짝 긴장하게 되고, 내 옆으로 오는 것 같으면 자리를 포기하면서까지 얼른 일어나서 멀리 피하게 되네요. 버스 정류장에서도 마찬가지고...;; 얼마 전에 영화 '악마를 보았다'를 보고 나서도 한동안 고생했는데, 님의 체험담이 너무 생생해서 이것도 그에 못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냥 집에만 콕 들어박혀 살아야 할라나봐요..;;
    • 아바래기가 공연히 빛무리님을 놀래켜드린 듯 싶네요 :)
      이미 10년도 더 된 일이고 요즘엔 저런 상술을 부리는
      못된 사람도 많이 안 보이는 것 같으니 긴장된 마음 푸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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