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정사]외로운 사랑의 파국

Posted by 아바래기
2010. 3. 31. 16:55 아바래기의 세상보기

들어가며……
 마리사 드바리의 <시나리오 쓰기의 마법>이라는 작법서에서 본보기 영화로 수도 없이 언급된 영화 <위험한 정사>를 얼마전 다시 찾아보게 되었다. 1987년 ‘에로틱 스릴러’라는 장르를 내세워 대 흥행에 성공한 이 영화는 국내에서도 10여년전까지는 텔레비전 심야영화로 자주 등장하는 단골영화였다. 덕분에 우리 세대라면 한번쯤 봤을법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나 역시 몇 년전에 이 영화를 보긴 했지만 10여년 전에 본 영화라 다시 봤음에도 집중하고 볼 수 있었다.

고전적이지만 그만큼 효과적인 서스펜스적 요소 
 영화 <위험한 정사>는 “유부남인 주인공 ‘댄’이 ‘알렉스’와 하룻밤의 일탈을 즐긴 후 전혀 예상치 못한 ‘알렉스’의 집착으로 인해 자신의 아내와 딸이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되고 결국 모든 문제의 씨앗인 ‘알렉스’를 제 손으로 죽여야하는 상황까지 도달한다”는 지금보면 다소 통속적이기까지한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극적 위기감을 최대로 고조시킨 수작이다.

 서스펜스 드라마에서 가장 자주 쓰이면서도 효과적인 기법은 주인공을 가장 행복하고 평화로운 상황 속에 가둔 뒤 그들 모르게 위험이 진행되고 있음을 관객에게 보여주는 방식이다. 
 영화 <위험한 정사> 또한 댄의 가족은 이미 ‘알렉스’라는 정신병자에게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지만 ‘댄’은 자신의 가족에게 이런 사실을 숨기기에 급급하다. ‘알렉스’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댄은 아내가 그토록 원하던 이사를 허락하게 되고 그 결과 아내는 남편과의 ‘갈등’이 해소됐다고 여기며 더욱 더 행복하고 평화로운 순간에 빠져들고 마는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죄없는 댄의 아내와 딸은 언제 무너질 지 모르는 행복에 빠져서 ‘알렉스’의 위협을 전혀 감지 못하는 상황,바로 이 상황이 가족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댄에게 관객들이 감정이입을 할 수 있게 만든다. 
 영화는 1차적으로 관객이 ‘댄’에게 감정이입을 하도록 만든 뒤 ‘알렉스’의 광기와 집착이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확장되게 그리면서 위기감을 고조시킨다. ‘알렉스’의 집착이 커져가는 모습을 보면서 관객은 그녀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궁금해하면서 한편으로는 댄의 가족을 걱정하게 된다. 관객이 영화를 보며 주인공을 걱정하고 함께 불안해한다는 것. 그것만으로 이미 관격은 영화에 집중하고 있다는 걸 증명한다. 

 댄의 아내인 ‘베스’가 사라진 딸을 미친듯이 찾고 있는 장면에 알렉스와 아이가 아슬아슬한 놀이 기구를 타고 있는 장면을 대조적으로 병렬대치하는 장면은 영화 <위험한 정사>에서 가장 긴장감이 넘치는 장면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알렉스’는 댄의 딸에게 결코 나쁜 짓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알렉스가 댄의 딸과 놀아주는 장면만 놓고 본다면 평화롭다고 할 수 있는 장면이다. 그렇지만 이미 영화에게 푹 빠져버린 관객은 딸을 잃어버린 ‘베스’에게 감정을 이입하며 혹여나 ‘알렉스’가 딸을 해치는 것은 아닌지 숨 죽이게 된다. 영화가 설치해 둔 서스펜스적 요소에 관객이 걸려들었기 때문에 말이다. 

혼자하는 사랑의 결말
 우리가 했던 것이 과연 사랑이었을까? 흔히 헤어지는 연인들은 이런 생각을 한다. 사랑이 변하는 것인지 사람이 변하는 것인지 묻기 전에 사랑에 대한 환상을 깨기 싫어서 혹은 변심에 대한 책임을 묻기 싫어서 ‘사랑’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댄’이 사랑한 것은 누구일까? 마지막까지 지키려 했던 아내 ‘베스’와 딸이었을까? 아니면 제 손으로 죽여야만 했던 ‘알렉스’일까? ‘댄’이 진심으로 아내를 사랑했다면 왜 ‘알렉스’와 하룻밤 일탈을 즐겼어야만 했는지, 거꾸로 ‘댄’이 ‘알렉스’를 진정 좋아했다면 왜 가정을 버리지 못했는지 그 답은 명확하지 않는다. ‘사랑’은 쉽게 정의내리기 어려운 단어이므로. 그는 아마 아내와 딸을 사랑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사랑은 고통스러웠다. ‘고통스럽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사랑은 단순하 호감이 아닌 여러가지 감정이 뒤엉킨 복합적인 감정이다. ‘댄’의 가족을 향한 사랑은 무거운 책임감이 동반됐을 것이다. 그래서 ‘댄’은 ‘고통스럽지 않은’ 사랑을 찾기 위해 ‘알렉스’를 만난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 사랑은 지금까지와 차원이 다른 고통을 불렀지만 말이다. ‘댄’의 생각대로 무거운 사랑과 가벼운 사랑은 선을 그은 것처럼 분명하게 나뉘어져 있는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알렉스’의 외로운 사랑은 또 어떠한가? ‘알렉스’의 ‘댄’을 향한 사랑은 진심일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알렉스’는 언뜻 보면 완벽한 여자처럼 보이지만 겁데기를 벗으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결핍된 사람이다. ‘댄’이 없어서 방황하는 ‘알렉스’와 가족과 단란한 시간을 보내는 ‘댄’이 교차적으로 나타는 장면은 그녀의 결함을 낱낱이 고발하는 장면이었다. 그녀는 ‘댄’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구멍을 채워줄 ‘코로크 마개’를 필요로 한 것이다. 그녀가 ‘댄’이 아닌 그 누구를 사랑한다고 해도 그 사랑은 외로울 것이다. 그녀의 사랑은 언제나 혼자하는 사랑이기에. 자신의 구멍을 채워줄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지만 그녀는 현실을 외면하고 다른 사람에게 기대려고만 한다. ‘댄’을 향한 집착을 통해서 그녀가 사랑에 능동적인 사람으로 그려지지만 실상 그녀는 사랑에 수동적인 사람이다. 그녀는 자신의 넘치는 사랑을 ‘댄’에게 주려고 난동피우는 것이 아니라 ‘댄’에게 자신에게 줄 사랑을 구걸하는 것이다. 그가 사랑하는 가족을 없애면 그의 관심과 사랑이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을까 한줄기 희망을 붙잡는 것처럼.  
 그녀는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를 사랑해줄 사람을 사랑하려 한다. 수신인을 잃어버린 편지같이 그녀의 사랑은 갈 곳이 없다. 그렇게 그녀는 혼자만의 사랑을 했고, 결국 스스로는 끝내지 못했던 그 사랑을 ‘댄’이 멈춰버렸다.

끝으로……
 영화는 ‘알렉스’를 병적으로 그려가며 ‘댄’을 선량한 사람처럼 포장한다. 재수없게 ‘미친’ 여자에게 잘못걸린 선량한 가장으로 말이다. 외도의 시작은 ‘댄’과 ‘알렉스’가 함께 했으나 이 모든 원망은 정신이상자인 ‘알렉스’가 듣는다. 이처럼 결말에 도달한 <위험한 정사>는 단란한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댄’에는 면죄부를 던져주고 그의 죄를 더해서 ‘알렉스’를 심판하는데, 바깥에서는 잘나가는 커리어우먼인 독신녀 ‘알렉스’가 자신이 갖지 못한 ‘가정’으로 병적인 집착을 보였기에 자신의 죽음을 자초한 것이라는 뉘앙스가 강해서인지 노골적으로 가정을 갖지 않은 독신녀를 ‘괴물’로 몰았다는 당시 페미니스트들의 반발이 있었다고 한다. 이 영화를 보고 남았던 개운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은 사람들은 아마 감독의 ‘마초’적인 소스가 거북스러웠던 게 아닐까,싶다. 나 역시 그런 구석이 전혀 없는 게 아니고 말이다. 

 각설하고 이만 리뷰를 마무리 짓자면, ‘에로틱 스릴러’라는 장르성과 다소 자극적인 제목 때문에 영화 <위험한 정사>를 그렇고 그런 영화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종종 만나보는데 영화가 만들어진 시대를 생각한다면 잘 짜여진 서스펜스 드라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또 감독이 노골적으로 그리다 실패한 ‘정상적인 가정’과 ‘미친 여자’라는 구도는 역으로 정상과 비정상을 무엇으로 구분하는지, 진짜 피해자와 가짜 피해자가 누군지 생각하게 해본다. 오래된 작품이지만, 오래되었기 때문에 더욱 빛을 발하는 서스펜스적 요소를 한번 느껴들 보시길 바란다. 

위험한 정사
감독 애드리안 라인 (1987 / 미국)
출연 마이클 더글러스, 글렌 클로즈, 엘렌 폴리, 스튜어트 팬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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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거 분명히 본거 같기는 한데...
    이런 비슷한 제목의 영화들이 많아서 그런지
    내용은 기억이 잘 안나네요^^
  2. ㅎ 넹 비슷한 제목이 많아요.. ㅎㅎ 전 재밋게 봤던기억이^^
  3. 전 이거 뇌리에 남아있습니다...ㅎㅎ
    에로틱스릴러 참 재미있죠^^
    • 단순히 스릴러도 좋아하지만
      ‘에로틱 스릴러’는 그 장르만의 맛이 또 있다고 해야할까요?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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