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귀]마음의 구멍과 마주하다.

Posted by 아바래기
2010. 3. 24. 16:05 아바래기의 세상보기
아귀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안느-실비 슈프렌거 (열림원,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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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rangeant 불쾌한, 읽는 이를 불편하게 만드는. 이것이야말로 <아귀>를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이 아닐까 싶다. 클라라 그랑의 끝없는 자해와 자기혐오를 그린 이 책은 한 마디로 읽기 힘든 책이었다.(열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덮고, 또 덮고 했던 책은 참으로 오랜만이지 싶다.) <아귀> 이끌어가는 화자, 클라라 그랑은 더럽고 추악한 여자이다. 그녀는 거식증 환자이자, 색정녀이다. 이것은 그녀 스스로 말하는 자신의 모습이다. 클라라는 혐오스럽다. 먹고 토하기를 반복하며, 시도때도 없이 자위를 하며,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자신을 경멸하는 여자다. 그녀는 신께 자신의 더러움을 씻겨달라고 구원을 빌러 갔다가 오히려 성체를 훔쳐 그것을 먹는-그러면서 신을 먹었다는 사실에 감탄하는-구제불능의 사람이다. <아귀>는 첫장부터 마지막장까지 그녀의 추악함을 들춰내는 데 급급하다. 그러나 정작 그녀를 절망의 벼랑으로 몰아넣은 원인에 대해서는 간략하게 구겨넣었다. 그녀는 어린 시절 끔찍한 사건을 겪은 뒤부터, 자신의 몸에 구멍이 났다고 생각한다. 초경을 재앙으로 여기고, 어른이 되는 것을 피하고자 하는 구멍난 어린 아이. 그녀는 자신의 몸에 난 구멍들이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성폭행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동안 자신이 보여주었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 모두 치유되지 않은 상처에서 비롯됨을 밝히는 클라라는 정작 그 일과 본인의 상관관계를 부인하며 오로지 자신의 본질적 문제로 책임을 돌린다. 그것이 이 책을 읽는 이를 불편하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자신을 어른으로 성장시켜준 연인 프레데릭의 죽음을 지켜본 그녀는 그의 뼛가루를 삼키며 신의 명령에 드디어 따르게 되었다고 말한다. 결국 클라라가 불편한 도주를 끝내고 자신의 구멍을 마주하며 <아귀>는 다소 아쉽게 끝을 맺는다.  

주님도 아시다시피 또 다시 토하기 위해서죠. 하지만 제가 대체 무엇으로 뱃속을 채우는지, 그건 아시는지요? 그리고 무엇을 토하는지도요? 네? 이미 모든 것을 예견하신 주님…… 제 앞의 무를 더욱 더 똑똑히 보기 위해 저는 변기 바닥을 뚫어져라 응시해요. 제가 게걸스럽게 삼킨 그 모든 건 구역질 나는 공허,제가 토사물을 쏟아내는 건 저의 내장들을 씻어내는 일. 주님, 당신의 눈앞에 저는 번들거리면서 속은 텅 빈, 회한의 악취와 헛됨의 자취를 발산하는 거대한 자루에 지나지 않습니다.   

노통브적 문체로 소개된 안느-실버 슈프렌거는 강약 조절이 없는 작가이다. 자극적이고,더 자극적인. 책을 읽는 내내 구역질을 유도하는 것이 전부일지도 모르는. 그런 그녀가 평온한 스위스를 발칵 뒤집는 작가로 주목받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불쾌한 글을 쓰면서도 사랑을 받는 작가들의 공통점은 참신한 자극, 맛있는 통증을 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구멍 뚫린 아이가 저지르는 죄악. 더 큰 자극을 바라고 상상하게 만드는 필력을 지니고 있다. 굴곡도 없고, 페이스 조절도 없기 때문에 무서울 정도로 독자를 흡수해버지만 그것 자체가 완벽한 스토리에서 정반대의 노선을 탔다는 소리이다. 그것 나름대로 매력이 있고, 가치가 있지만 객관적으로 볼 때 두서없고 감상적이기만 한, 그러면서도 꾸역꾸역 밀어넣은 자극들에 느껴지는 불쾌감을 해소할 길은 없다. 덕분에 책을 읽고 삼일이 지났는데 여전히 불쾌하고 답답하다. 내 취향과는 맞아 떨어지는 소설이었지만 선뜻 남에게 추천하기는 어렵다고 해야할까? 

여담이지만 노통브적 문체로 소개될 만큼 그녀의 문체가 노통브와 닮았다고 묻는다면, ‘글쎄…’라고 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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