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터널 속에 갇힌 남자의 이야기

Posted by 아바래기
2010. 3. 24. 22:43 아바래기의 세상보기
터널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에르네스토 사바토 (이룸(김현주),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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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이해할 수 있었던 사람이 하나 존재했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바로 내가 죽인 사람이었다>.  이것은 후안 파블로 카스텔이 그를 온전하게 이해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 마리아 이리바르네를 살해한 동기에 관한 이야기이다. 터널 속에 갇힌 한 남자의 고백. 후안은 회개가 아닌 회고를  통하여 그와 마리아의 지독한 사랑을 세상에 내려놓는다. 병적이기에 순수한 후안의 사랑은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를 이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이미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오만한만큼 고독한 파블로의 그림을 완벽하게 이해한 마리아는 그의 터널에 처음으로 발을 디딘 사람이자, 파블로의 영역에 존재하는 유일한 사람이다.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 일종의 결벽증을 보이는 파블로에 비한다면 마리아와 타인의 연결고리들은 추잡하기 짝이 없다. 눈 먼 남편의 앞에 연인이라 칭해도 어색할 것 없는 후안을 보란듯이 데리고 오고, 너무나 쉽게 남자를과 오해를 살만한 관계를 만드는 그녀를 파블로가 이해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마리아는 그를 이해하지만, 그는 그녀를 결코 이해할 수가 없다. 그것이 두 사람의 구멍이었다. 결국 그 구멍을 채우지 못했고 어느 시점에 도달하자 감정들이 한쪽으로만 기울기 시작했다. 사랑,증오,연민 그리고 집착. 이 모든 것이 얽히고섥혀 파블로의 터널에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다.

 

 내 그림을 제대로 이해했던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었다. 한편,이 작품들은 우둔한 관점을 지닌 비평가들로부터 갈수록 더 칭찬받을 것임이 틀림없다. 그리고 이 지옥의 벽들은 날이 갈수록 더 밀폐된 상태가 될것이다.-본문 중 발췌

 

결국 파블로는 사랑이란 형태로 자신의 터널을 공격하는 마리아를 살해하고 만다. 그는 원점으로 돌아가고 만 것이다. 그의 터널은 이제 온전히 그만의 것이 되었다. 태고적부터 그래왔듯이. 아르헨티나의 예사롭지 않은 작가 에르네스토 사바토의 <터널>은 사랑의 일그러짐을 지긋지긋할정도로 어지럽게 그려냈다. 첫장부터 마지막장까지 파블로의 혼란스런 심정과 함께 하는 <터널>은 아무리 부숴도 사라지지 않는 장벽을 파블로라는 고독한 남자와 함께 천천히 더듬어간다. 인간에게 있어서 터널은 어떤 의미일까? 사랑이란 이름 아래서도 부술 수 없는 경계일까. 파블로가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것인지, 자신을 이해해주기 때문에 불가항력적으로 사랑하게 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그녀를 내쫓음으로써 그의 터널은 더 깊어지고 어두졌을 것이다. 파블로를 보면서 내가 아파했던 것만큼. 남미문학은 역시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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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귀]마음의 구멍과 마주하다.

Posted by 아바래기
2010. 3. 24. 16:05 아바래기의 세상보기
아귀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안느-실비 슈프렌거 (열림원,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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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rangeant 불쾌한, 읽는 이를 불편하게 만드는. 이것이야말로 <아귀>를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이 아닐까 싶다. 클라라 그랑의 끝없는 자해와 자기혐오를 그린 이 책은 한 마디로 읽기 힘든 책이었다.(열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덮고, 또 덮고 했던 책은 참으로 오랜만이지 싶다.) <아귀> 이끌어가는 화자, 클라라 그랑은 더럽고 추악한 여자이다. 그녀는 거식증 환자이자, 색정녀이다. 이것은 그녀 스스로 말하는 자신의 모습이다. 클라라는 혐오스럽다. 먹고 토하기를 반복하며, 시도때도 없이 자위를 하며,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자신을 경멸하는 여자다. 그녀는 신께 자신의 더러움을 씻겨달라고 구원을 빌러 갔다가 오히려 성체를 훔쳐 그것을 먹는-그러면서 신을 먹었다는 사실에 감탄하는-구제불능의 사람이다. <아귀>는 첫장부터 마지막장까지 그녀의 추악함을 들춰내는 데 급급하다. 그러나 정작 그녀를 절망의 벼랑으로 몰아넣은 원인에 대해서는 간략하게 구겨넣었다. 그녀는 어린 시절 끔찍한 사건을 겪은 뒤부터, 자신의 몸에 구멍이 났다고 생각한다. 초경을 재앙으로 여기고, 어른이 되는 것을 피하고자 하는 구멍난 어린 아이. 그녀는 자신의 몸에 난 구멍들이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성폭행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동안 자신이 보여주었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 모두 치유되지 않은 상처에서 비롯됨을 밝히는 클라라는 정작 그 일과 본인의 상관관계를 부인하며 오로지 자신의 본질적 문제로 책임을 돌린다. 그것이 이 책을 읽는 이를 불편하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자신을 어른으로 성장시켜준 연인 프레데릭의 죽음을 지켜본 그녀는 그의 뼛가루를 삼키며 신의 명령에 드디어 따르게 되었다고 말한다. 결국 클라라가 불편한 도주를 끝내고 자신의 구멍을 마주하며 <아귀>는 다소 아쉽게 끝을 맺는다.  

주님도 아시다시피 또 다시 토하기 위해서죠. 하지만 제가 대체 무엇으로 뱃속을 채우는지, 그건 아시는지요? 그리고 무엇을 토하는지도요? 네? 이미 모든 것을 예견하신 주님…… 제 앞의 무를 더욱 더 똑똑히 보기 위해 저는 변기 바닥을 뚫어져라 응시해요. 제가 게걸스럽게 삼킨 그 모든 건 구역질 나는 공허,제가 토사물을 쏟아내는 건 저의 내장들을 씻어내는 일. 주님, 당신의 눈앞에 저는 번들거리면서 속은 텅 빈, 회한의 악취와 헛됨의 자취를 발산하는 거대한 자루에 지나지 않습니다.   

노통브적 문체로 소개된 안느-실버 슈프렌거는 강약 조절이 없는 작가이다. 자극적이고,더 자극적인. 책을 읽는 내내 구역질을 유도하는 것이 전부일지도 모르는. 그런 그녀가 평온한 스위스를 발칵 뒤집는 작가로 주목받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불쾌한 글을 쓰면서도 사랑을 받는 작가들의 공통점은 참신한 자극, 맛있는 통증을 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구멍 뚫린 아이가 저지르는 죄악. 더 큰 자극을 바라고 상상하게 만드는 필력을 지니고 있다. 굴곡도 없고, 페이스 조절도 없기 때문에 무서울 정도로 독자를 흡수해버지만 그것 자체가 완벽한 스토리에서 정반대의 노선을 탔다는 소리이다. 그것 나름대로 매력이 있고, 가치가 있지만 객관적으로 볼 때 두서없고 감상적이기만 한, 그러면서도 꾸역꾸역 밀어넣은 자극들에 느껴지는 불쾌감을 해소할 길은 없다. 덕분에 책을 읽고 삼일이 지났는데 여전히 불쾌하고 답답하다. 내 취향과는 맞아 떨어지는 소설이었지만 선뜻 남에게 추천하기는 어렵다고 해야할까? 

여담이지만 노통브적 문체로 소개될 만큼 그녀의 문체가 노통브와 닮았다고 묻는다면, ‘글쎄…’라고 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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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빛바랜 ‘추억’을 말하다.

Posted by 아바래기
2010. 3. 24. 15:51 아바래기의 세상보기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온다 리쿠 (노블마인,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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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태양이 모습을 들어냈다. 나에게는 처음으로 접해보는 온다 리쿠의 작품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는 그와 그녀의 마지막 밤을  디테일하게, 그리고 처절하게 담아내고 있다. 제목이 한 숨에 읽기엔 조금 벅차다는 느낌이 드는데, 그것은 일본에는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고모레비,라는 하나의 명사로 정리되어 있기 때문이었다고 역자 후기에 쓰여있다.(제목을 풀이하는데 역자는 적잖게 당황한 듯 싶다.) 제목에 담겨있는 은은한 햇살과도 같은 느낌이 나는 참 좋았다.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 , 그리고 그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 여전히 찬란하지만 마주볼 수 있는 자비로움. 이 책은 햇살이 시신경을 헤집어 놓았을 때의 자극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내일이면 각자 다른 곳으로 떠나버릴 연인의 마지막 밤, 마지막 대화. 마지막이기에 할 수 있었던 대화들은 그들이 서로 공유했다고 여겼던 기억들이 약간씩 그러나 확실하게 어긋나 있임을 알려준다.

 

“사진을 찍을 때면 누구나 웃는 얼굴이 되잖아. 학교 사진도 그렇고 직장 사진도 그렇고. 아무튼 카메라를 보면 반사적으로 웃게 되어 있어. 그러니까 앨범에는 웃는 얼굴뿐이지. 그런 사진들만 보고 있다 보면 점점 기억이 바뀌어버리는 것 같아. 당시, 그 집단이 정말로 화기애애했던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고 말지. 실제로는 삐거덕거렸거나, 괴롭힘을 당했거나, 사랑과 미움으로 뒤죽바죽이었다고 해도.”

 우리는 웃었다.

카메라를 향해 장래에 이 사진을 볼 우리들을 향해. 결코 나의 과거가 나쁘지 않았노라고 자기 자신을 타이르기 위해. 카메라를 향해 웃고 있는 우리는 미래의 우리와 항상 공범 관계이다.
                                                                                                -본문 중 발췌  

 

 이야기는 단 한장의 사진으로 시작한다. 나이든 남자와 젊은 남자, 그리고 젊은 여자.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한 장의 사진을 통해 연인은 그들이 저지른 악행, 혹은 서로에게 미루어왔던 처벌의 시간을 만나게 된다.  수많은 공통점, 닮은 취미. 그리고 무엇보다 끈끈한 혈육의 정으로 이어져있다는 사실이 그들에게서 지독한 사랑의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그들은 한 핏줄이라는 조건하에서 열렬한 사랑을 나누었다. 상식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그 사랑을 억압하지만 결과적으론 그런 박해를 통해서 더욱 더 불타오르는. 그들의 사이를 헤집어놓은 한 남자의 죽음. 무대에 오른 배우처럼 격양된 목소리로 쉴 새 없이 서로를 공격하면서 진실에 도달한다. 두 사람의 팽팽한 신경전, 그렇게 도달한 진실이 이 작품의 묘미이자 전체이기 때문에 더 이상의 미리니름은 자제하도록 하겠다. 이 작품을 통해서 나는 사람들이 왜 그토록 온다 리쿠에 열광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온다 리쿠는 분명 굉장한 필력의 소유자이다. 하룻밤이라는 제한적 시간, 제한적 무대인 텅 빈 집 안, 그 곳의 연인. 이런 설정 아래에서 온다리쿠가 끌어낸 마법은 경이로울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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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카니발]나는 괴물을 수집한다.

Posted by 아바래기
2010. 3. 24. 15:32 아바래기의 세상보기
몬스터 카니발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안 소피 브라슴 (문학동네,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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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그들과 함께 있을 때만 살아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들이야말로 나와 가장 흡사한 인간들이었으므로. 그들의 소름끼치는 눈빛 속에서 삶이 가장 생생하게 빛났으므로.-
                                                                                                       -본문 중 발췌

 그때부터 나는 괴물들을 만나고 다녔다. <숨쉬어>의 천재 소녀작가, 강렬한 성인식을 치르다! 안 소피 브라슴이 열일곱 살에 발표한 첫 소설 <숨쉬어>를 읽고나서 연이어 읽으려고 했던 <몬스터 카니발>. 그러나 결과적으론 <몬스터 카니발>을 먼저 읽고 말았다. 인간 괴물을 수집하는 남자와 ‘추함’ 그 자체인 여자가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는 따뜻하고 가슴 아픈 소설인 줄 알고 읽은 나는 장이 넘어갈수록 충격을 넘은 불쾌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해석의 차이 혹은 사랑의 다양한 형태에 대한 몰이해인지는 몰라도 책을 덮고나서 내가 기대했던 묵직한 감성들이 느껴지는 소설은 아니었다. 다만 책을 덮은지 몇 시간이 흐르고 나서 ‘이것 또한 사랑이 아니었을까?’ 하는 물음이 떠오를 뿐이었다.

 

 그렇게 해서 조아섕과 나는 처음으로 몸을 섞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알게 되었다. 남자가 여자의 몸 위에서 어떻게 스러져가는지. 한 쪽은 서서히 죽어가는데 다른 한쪽은 여전히 살아 있다……한쪽은 제 자신을 잊어버리는데 다른 한쪽은 여전히 제 자신을 또렷하게 의식한다……-본문 중 발췌

  입 부근이 심하게 뒤틀려 얼굴 전체적으로,몸 전체적으로 흉칙함이 번져나간 마리카는 이해하기 힘든 인물이다. 그녀는 하나뿐인 친구 가엘을 자랑스럽게 여기다가 얼마가지 않아 그녀를 천박하다고 매도하고 비난하면서 자신의 심기를 조금이라도 건들면 당장 죽여버리겠다고 엄포를 놓는다.(물론 그녀의 마음 속 동굴에서 말이다.) 독이 바싹 올라 가엘을 물어뜯으려 작정하고서도 얼마되지 않아 현실적인 문제, 그녀가 유일의 친구라는 점 혹은 아름다운 그녀의 곁에 있으면 약간의 대리만족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마음을 고쳐먹곤 한다. 이토록 변덕스런 그녀의 마음은 자신의 모습 또한 추녀이기도 하지만 미녀이기도 한, 아름다움과 결여되어 있지만 매혹적인 사람으로 비추곤 한다. 그렇기에 그녀는 항상 혼란에 둘러쌓여있다. 여기서 마리카의 변덕스러움에 촉매제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조아섕이다. 그는 그녀에게 자신의 추함을 잊는 시간을 제공한다. 조아섕이 그녀의 추함을 마음껏 수집할 수 있는 동안 말이다. 조아섕이 마리카에게서 현기증이 날 정도의 끔찍한 ‘추함’을 느끼고 그것을 상대로 정욕을 채우는 사이 반대로 마리카는 자신이 평범한 여성들처럼 아름답고 향기롭다고 느끼는 아이러니가 이 책의 핵심이 아닐까? 사전적 의미의 사랑이라고 하긴 어렵지만 그것 외에는 두 사람의 관계를 정의할 수 있는 말이 없는 것 같다. 퍼즐조각처럼 딱 맞아떨어진 두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관계가 지속될수록 감당하기 힘든 구멍이 생기고, 증오·연민·사랑…인간이 지닌 모든 감정들이  소모되고 만다. 자신이 추악하기 때문에 정욕을 느끼는 조아섕을 알아갈수록 스스로의 ‘흉몰스러움’이 단단해진다는 사실을 감당하기 힘든 마리카와 시간이 흐를수록 추해지는 마리카 때문에 괴물이 되어가는 조아섕이나 내겐 벅찬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한번 더 시간을 내서 괴물들의 대화를 경청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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