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큰 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한지 얼마 안 됐을 때, 우리딸과 같은 학교에 아이를 입학시킨 친구가 저에게 제안을 하나 하더라고요. 학교 체육진흥회에 같이 들어가지 않을래? 라고 말이예요. 이 친구가 전부터 아이들 학교 진흥회 같은 것에 관심을 두던 친구가 아니라서 갑자기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까,
“아이들 내신을 잘 받으려면 학부모가 학교서 한자리 꿰차야 한다잖아!”
이런 소리를 하더라고요. 지금은 제 친구가 한 소리가 얼마나 터무니 없는 소리인지 잘 알지만 당시만해도 주위 엄마들이 저 비슷한 소리를 자주 했었고, 무엇보다 첫 아이라서 중학교 생활이 초등학교 생활과 별 차이 없다는 걸 몰랐기에 제 얇은 귀가 사정없이 팔랑거리고 말았지요.
결국 아바래기는 평소 관심도 없던 체육진흥회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어디 가입만 했을까요? 부회장 자리를 덜컥 맡아버리기까지 했지요. 당시 체육진흥회 회장님이 워낙 유능하셔서 할 일이 없다고 다른 학부모님들이 억지로 절 부회장 자리에 앉혀버리셨지요.
다행히도 모종의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만해도 체육진흥회 활동은 순조롭기만 했습니다. 친구따라 강남간 격으로 시작한 활동이지만 선수들이 좋은 기록을 내주면 괜시리 뿌듯해지기도 했으므로.
그렇게 한학기 동안의 활동이 순조롭게 마무리 되는 듯 했습니다. 선수들의 경기성적도 우수했고 체육진흥회의 활동도 나쁘지 않았거든요. 그렇기에 기분좋은 마음으로 체육진흥회 1학기 정산기념 회식에 참가할 수 있었죠. 처음엔 그동안 수고한 선수들에게 배터지게 먹으라고 고기도 사주고, 체육선생님과 코치분들이랑 가볍게 술한잔 하는 자리였죠.
당시 아바래기는 직장에 다녔기 때문에 이런 회식자리는 처음 참가하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선수들이랑 거하게 밥 먹고 나면 회식이 끝나는 건줄 알았지요. 그런데 체육진흥회 회식에도 1차와 2차가 따로 있는 겁니다. 1차는 아이들과 함께 밥먹고 하는 자리고, 2차는 아이들을 보내고 선생님들과 진흥회 학부모들끼리 노래방에 가는거였어요.
사실 노래방에 가서도 처음엔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습니다. 허나 술이 한 두잔 더 들어가면서부터 분위기가 묘해지더라고요. 자연스레 체육진흥회쪽 학부모와 체육선생님들이 노래방 반주에 맞춰 하나 둘 짝을 지어 블루스를 추기 시작하는 겁니다. 제가 보수적이여서 그런지 쉽게 납득이 안가는 장면이었지요. 저를 꼬셔서 체육진흥회에 먼저 가입한 친구도 이런 장면은 처음인지 놀란듯 했고요. 저는 도통 적응이 안되서 핑계를 대고 자리를 나서려했지요. 근데, 그 때.
“○○이 어머님도, 한 곡 추시죠?”
“맞습니다~ 분위기 좋은데 빼지 말고 한번 추세요!”
“한 곡 땡기시죠? ○○이 어머님~!”
평소 점잖고 매너좋기로 유명한 체육선생님들이 저를 무조건 붙잡는 거예요. 제가 가방을 챙기는 걸 보고 붙잡으려는건지. 이것 참 곤란하더군요. 제가 이대로 자리를 벅차고 나가자니 이 분위기를 싫어하는 건 저와 친구뿐인데 괜히 튀는 짓을 하는 것 같고 말이죠. 평소 술을 먹지 못해서 다른 분들처럼 분위기에 안 취해서 그런지 정말 어거지로 끌려나갔습니다. 그리고 딸아이에게 체육을 가르치시는 선생님과 블루스라고 하기도 모호한, 참으로 어쩡정한 블루스 추는 시늉만 하고 다시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제 아무리 스승의 그림자조차 밟지 않으려하던 시절이 지났다고해도 딸아이의 스승과 학부모가 함께 스텝을 밟는 시절이 올 줄이야! 술 먹고 분위기에 취하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저는 그 날 문화적 충격을 받았습니다. 나중에 체육진흥회 어머님들만 모이는 자리에서 이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왔는데 불만을 갖지 않는다거나, 분위기가 그러니 어쩔 수 없다는 생각만 하시는 분들이 수두룩 많다는 걸 알고 두번 놀랐고요. 학교선생님과 학부모 사이에 친근감을 위해서 그랬다, 전통이여서 그랬다…이런 말 저런 말 나왔지만 이건 영~
제가 너무 꽉 막혀서 예민하게 군 것인지도 모르지만 아바래기는 충격의 회식 이후로 남은 한 학기 활동을 겨우겨우 마무리 짓고 체육진흥회에서 나왔습니다. 제가 진흥회를 탈퇴할 무렵에 위와 같은 풍습을 없앤다 어짼다 말이 많았는데 어떻게 되었을런지… 최근 친구 중 한 명이 요즘 학교 진흥회 활동을 하는데 여러가지로 선생님들이 깨는 행동을 하셔서 당혹스럽다는 이야기에 옛 경험이 생각나 주절주절 늘어놓아봤어요.
이 글은 모든 교사를 싸집어서 욕하자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해서 당시의 체육교사들을 콕찝어 비난하고자 하는 의도도 없습니다. 다만 이런 문화가 우리나라에 자리잡아도 좋은지 궁금해지네요. 말그대로 제게는 너무나도 큰 문화충격이어서 말이죠~ 이런 제가 너무 보수적인가요?T^T
대박입니다. ^^
프하하핫
완젼 잘 찍고들 오시길 ^^
스피커를 지금은 들을수없어서,,
오죽 수험생들에게 중요한 날이면 그렇겠습니까?
다들 잘 봐야 할텐데 말이죠